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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검색 " 레제코"에 대한 통합 검색 내용이 2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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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세계 超一流 삼성전자의 힘
화제기업   한국이 낳은 超一流 / 올 한해 순익 10조원...사상최대 기대!김성택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상반기에만 영업이익 약 4조원, 웬만한 기업이 한해에도 내기 어려운 이익을 분기마다 벌어들이는 삼성전자. 올 들어 마이크론·인피니언·모토롤라 등 경쟁사들이 여지없이 적자를 기록하고 휴대폰업계 1위인 노키아는 삼성의 절반 수준의 이익을 발표하면서 매출전망치를 하향조정한 데 반해 삼성전자는 2000년에 기록한 6조원의 순이익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 D램 가격만 받쳐준다면 10조원의 이익도 가능하다는 기대섞인 얘기까지 나오는 이 회사의 怪力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삼성전자 경쟁력의 원천을 집중취재했다.<편집자> 도쿄(東京)의 소니 본사 8층 앤도 쿠니다케 사장의 사무실에서는 ‘삼성전자’라는 말만 나와도 불안해 하는 반응을 보인다”(‘소니의 반격’, 비즈니스위크 2002년 3월11일) “노키아의 혁신성이 약해지고 있다. 나는 삼성에서 차세대 전화기가 개발될 것으로 전망한다.”(알록 쟈 매킨지 컨설턴트, 비즈니스위크 2002년 3월25일) 세계 전자·정보기술(IT)업계에 ‘삼성전자 신드롬’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시장의 경쟁업체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삼성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기업인들은 삼성전자의 성공 스토리에서 배울 것을 찾기 위해 주목하고 있다. 특히 소니·인텔·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세계 최상위 그룹 기업들은 삼성과 손잡기 위해 추파를 던지고 있다. 한때 삼성 경영진을 홀대하던 외국의 기업인들이 이제는 삼성 경영진을 만나려고 줄을 선다. 타임·파이낸셜타임스·니혼게이자이·포브스·포천·레제코 등 해외 언론들도 잇따라 ‘삼성전자 왜 강한가’를 집중조명하고 있다. 세계 IT업계에 부는 삼성전자 신드롬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이유는 단순한 데서 출발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조9,00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그러나 지난 2000년 무려 6조원의 이익을 냈던 데 비하면 지난해 이익은 절반 수준에 불과한데 왜들 호들갑일까. 업계의 놀라움은 과거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2000년 삼성이 6조원의 이익을 냈을 때 선진기업들은 “한국의 한 기업이 ‘소가 뒷걸음질치다 쥐를 잡은 격’이라고 받아들였다.”(이윤우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사장). 아시아의 한 기업이 어쩌다 이익을 많이 냈다는 반응이었다. 당시만 해도 세계시장의 톱 클라스 기업들은 삼성전자를 한 수 아래 기업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지난해 선진국 기업들이 극심한 IT경기 침체로 줄줄이 대규모 적자행진을 벌이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반도체업체인 마이크론과 인피니언이 각각 19억달러 수준의 적자를 낸 것을 비롯해 휴대폰 업체인 에릭슨이 20억달러 등 알 만한 기업들은 대규모 적자로 곤욕을 치렀다. 특히 일본업체들의 경우 적자폭이 천문학적 수준에 이르렀다. 히타치와 마쓰시타가 각각 4,800억엔과 4,300억엔의 적자를 냈으며 도시바·NEC·후지쯔도 2,000억엔에서 3,000억엔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반도체업계의 최강자인 인텔은 삼성전자와 비슷한 수준인 20억달러의 흑자를 냈지만 흑자폭이 대폭 줄었다. 일본업체 중에서는 소니가 153억엔의 흑자를 내 겨우 체면을 유지했다. 이렇게 극심한 IT업계의 불황 속에서도 삼성전자가 흑자기조를 유지하자 해외에서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난 1999년 3조1,700억원을 포함해 3년 동안 벌어들인 순이익이 모두 12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삼성전자보다 많은 이익을 낸 전자업체는 GE(194억달러)·IBM(114억달러)·노키아(33억달러) 정도가 있을 뿐이다. 절묘한 역할분담, 회장­구조본­경영진의 3각편대 더구나 올 2분기 삼성전자의 이익규모(순이익 1조9,200억원)는 세계 IT업계 최고치를 기록했다. 삼성전자가 올린 순이익은 15억9,700만달러로 세계 최고 IT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15억3,000만달러)를 앞섰으며 세계 최대 반도체기업인 인텔(4억4,600만달러)을 크게 추월한 규모다. 세계 최대 컴퓨터 판매업체인 IBM의 2분기 순익조차 구조조정 특별비용을 감안하더라도 14억5,000만달러에 그쳐 삼성전자에 미치지 못했다. 이밖에 같은 반도체기업으로 삼성과 경쟁관계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2,000만달러)와 인피니언(-9,000만달러, 추정실적) 등은 대규모 순손실을 기록했으며 통신분야 경쟁관계인 노키아(8억5,000만달러)·모토롤라(-23억2,000만달러), 디지털 가전분야의 소니(1억5,000만달러,추정)·필립스(-13억4,000만달러)등도 삼성의 실적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IT분야를 포함, 세계 전체의 제조업계 내에서도 35억2,000만달러를 기록한 제너럴 일렉트릭(GE) 등 1∼2개사를 빼고는 삼성의 순익규모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른 경쟁기업들이 줄줄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반해 삼성은 어떠한 침체에도 최소 3조원의 이익은 낼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고 자신하고 있다. 상반기에만 이미 4조원의 영업이익을 낸 데 이어 올해는 2000년에 기록한 6조원의 순이익 기록을 너끈히 경신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 D램 가격이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내부에서는 두자릿수의 이익 실현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기대섞인 얘기도 돌고 있다. 이에 따라 이 회사의 현금 동원 능력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올 6월말 현재 이 회사의 현금보유는 6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말 2조8,000억원이던 현금이 3월말 4조100억원으로 늘어난 뒤 불과 3개월만에 다시 2조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해외 법인까지 포함해 이 회사의 총차입금이 3조7,5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마음만 먹는다면 모든 빚을 갚고도 수조원의 현금이 남아도는 셈이다. 삼성전자는 이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연말에는 9조원 내외의 현금이 쌓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올해 1조원을 자사주 매입에 쓰기로 하고 지난 4월중 5,000억원어치의 자사주를 사들였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8년 13조원의 부채를 안고 허덕이던 것과 비교하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된 격’(桑田碧海)이다. 삼성전자 투자자홍보(IR) 팀장 주우식 상무는 “이익이 이처럼 많이 나는 것이 처음 겪는 구조적인 변화여서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중”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돈이 철철 넘쳐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얘기다. 해외에서 이 회사를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익규모 때문이 아니다. 각 사업의 성장속도와 강도, 성장의 질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메모리 반도체·모니터·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에서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어 휴대전화까지 세계 3위로 뛰어올랐다. 지난 1994년 미국에 처음 수출하기 시작한 지 불과 7년만이다. 휴대전화업계 상위권 업체 중에서 매출이 늘고 있는 업체는 삼성전자뿐이다. 최근 업계 내에서 삼성전자의 순위 변화는 그야말로 수직상승중이다. 반면 D램의 경우와 같이 삼성이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품의 경우는 지난해 마이크론 등 2위 이하 기업과의 격차를 더 벌린 것으로 나타났다. D램시장점유율은 2000년 20.9%에서 지난해 27%로 높아지며 1위를 굳게 지켰다. 반면 마이크론은 시장점유율이 18.7%에서 19%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쳐 삼성과의 격차가 확대됐다. 각 사업분야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이 높아지는 모습이 확연해지고 있다. 삼성인들은 세계적인 기업들과의 교류에서 달라진 위상을 확인하고 있다. 김현덕 경영기획팀장(전무)은 “예전에는 선진기업과 교류회를 갖거나 협회에 참여하려고 하면 ‘기술만 빼내가는 것 아니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라’라며 까다롭게 굴었다. 그러나 지금은 차세대 네트워크 사업을 서로 같이 하자고 손을 내민다. IBM·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미국과 일본의 기업들이 다투듯 제휴를 요청하고 있다. 우리의 기술과 위상이 제고됐음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올해 초에는 두명의 스타 CEO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 전자업계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을 과시했다. 진대제 디지털미디어네트워크 사장이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쇼인 CES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개막연설을 했다. 그동안 CES 개막연설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등 세계적 IT기업 CEO가 맡아왔다. 지난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International Soild State Circuit Conference) 회의에서는 황창규 삼성전자 메모리부문 사장이 기조연설자로 참석, 향후 5년간 반도체산업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가장 권위있는 반도체학회로 알려진 ISSCC에서 한국기업인이 기조연설을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합리적인 경영기법과 이론으로 무장한 선진국 기업들을 따돌리고 있는 것을 보면 삼성전자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음에 틀림없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왜 강하냐’는 질문에 이건희 회장의 선견지명과 리더십, 강도 높은 구조조정, 인재제일주의, 적절한 유망사업 선택과 적기 투자, 합리적인 선진 경영기법 도입 등 다양한 차원의 답변을 내놓는다. 이건희 회장-구조본-전자 경영진으로 이어지는 경영진의 3각편대가 균형과 효율에 맞게 잘 운용되고 있다는 경영구조 차원의 분석도 있다. 이건희 회장은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오너로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며 구조본은 전략적인 경영과 위기관리 등을, 엔지니어 출신 중심의 전자 경영진은 책임경영을 실천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 또 서구적인 경영기법과 한국적인 경영의 장점이 잘 결합됐다는 분석도 있다. “서구 선진국의 기업들은 카리스마가 있는 경영인들이 있지만 단기 성과에 치중하고 자기중심적이다. 일본은 집단 컨센서스 중심의 운영체제여서 반도체 불황기에 아무도 투자를 결정하지 못한다. 반면 우리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움직이지만 의사결정이 빠른 총수중심경영의 장점을 갖고 있다. 반도체 불황기에 우리는 딱 투자를 결정했다. 그것이 1등의 요인이다.”(이윤우 반도체 총괄사장) 큰돈 벌어주는 캐시카우와 다양한 사업포트폴리오 ‘삼성전자 왜 강한가’를 한마디로 잘라 얘기하기는 어렵다. 앞에서 지적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근인(近因)에서부터 찾아보면 첫번째 요인은 떼돈을 벌어주는 ‘캐시카우’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IMF때 외국의 애널리스트들이 왜 문어발식으로 하느냐며 반도체를 제외한 가전·디지털미디어·통신을 정리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당신은 1~2년을 바라보는 투자자지만 나는 5~10년 앞을 내다봐야 하는 경영자’라고 맞받아쳤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해 반도체가 어려웠지만 통신에서 1조원 이상을 벌었습니다. 반도체가 못벌자 다른 부문이 벌어주는 사업포트폴리오의 위력이 발휘된 것입니다. 사업부문끼리 제품을 공급하는 내부시장이 형성되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혹독한 불황 속에서 이만한 실적을 낸 기업이 어디 있느냐며 놀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윤종용 부회장) 캐시카우의 첫번째는 여전히 메모리·비메모리·TFT­LCD 등 반도체사업이다. 반도체부문은 지난해 하반기 사상 최악의 반도체 경기침체 속에서도 6,9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주력인 128메가 D램이 전년도의 18달러에서 1달러 이하로 폭락했는데도 상반기에 벌어들인 이익으로 버텼다. 반도체는 지난 1분기 D램 가격이 바닥에서 막 벗어나자마자 9,9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엄청난 복원력이다. 반도체시장이 하반기부터 본격 회복될 것이라는 전문기관들의 전망이 들어맞는다면 반도체사업은 다시 한번 신기록을 작성할 가능성이 높다. TFT­LCD도 새로운 캐시카우 대열에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다. 이미 LCD는 브라운관 모니터를 급속히 대체하면서 공급부족이 지속되고 있다. 더욱이 올해 모니터시장의 30%를 LCD모니터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LCD시장 세계 1위로 최근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40인치 LCD 개발에 성공, 시장에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지난해부터 휴대전화가 새로운 캐시카우로 추가됐다. 지난해 1조2,000억원의 이익을 내면서 통신장비를 포함한 정보통신부문이 1조3,7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올해 1분기에도 정보통신부문은 휴대전화 호황에 힘입어 8,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집계됐다. 주우식 상무는 “처음에는 지난해 4분기 실적이 너무 좋아 그보다 줄어들지나 않을까 우려했는데 예상 외로 크게 늘어났다”며 자신도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해와 올해 에릭슨과 모토롤라 등 2위 이하 기업들이 줄줄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1위인 노키아의 경우 이익을 내고는 있지만 매출과 이익규모가 모두 줄어드는 추세다. 현재의 추세로 볼 때 올해 3위를 차지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휴대전화업계에서 삼성전자가 일으키고 있는 돌풍은 업계 1위인 노키아조차 긴장시키고 있다. 뉴욕 번화가에 걸린 삼성전자 광고탑은 이 회사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영화'스파이더맨'에서도 이 회사 광고탑이 그대로 노출됐다.  30% 인력 줄인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결과 경쟁업체들이 특히 두려워하는 점은 향후에는 다양한 제품들이 서로 융합화·복합화하면서 다양한 사업을 고루 갖춘 삼성전자가 위력을 발휘하리라는 것. DVD와 VTR를 합친 DVD ‘콤보’가 미국시장에서 대히트치면서 이같은 융·복합화의 기대를 부풀게 하고 있다. DVD 콤보는 지난해 130만대가 팔려나갔다. 휴대전화에 개인휴대정보단말기(PDA) 기능을 결합한 스마트폰도 미국 ‘비즈니스위크’지로부터 베스트 제품으로 선정됐다. 여기에 휴대전화와 PC의 기능을 결합한 휴대용 PC ‘넥시오’ 등 계속 새로운 융·복합화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거나 개발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같은 융·복합화를 디지털컨버전스(융합)라고 부르며 향후 시장을 이같은 제품들이 주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새로운 캐시카우 후보군을 충분히 확보한 셈이다. 디지털TV나 3세대 휴대전화사업을 하고 있는 업체 중에서 반도체 기반을 갖춘 회사는 삼성전자밖에 없다고 전병서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분석한다. 반도체와 LCD 등 핵심부품에서의 탄탄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앞으로 3세대 휴대폰에 들어가는 디지털동영상처리칩과 디지털TV용 메모리를 자체제작할 수 있는 회사는 삼성전자가 거의 유일하다는 것. 반면 일본 소니의 경우 통신사업에 진출했다 쓰라린 실패를 맛보았다. 소니는 지난해 휴대전화가 향후 사업의 주축이 될 것이라며 눈길을 끄는 디자인으로 여러 종류의 휴대폰을 출시했다. 하지만 3억4,000만달러의 손실을 보고 에릭슨과 합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도시바·NEC·히타치의 경우는 지난해 적자를 견디다 못해 D램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다. 그러나 다양한 사업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삼성의 괴력을 설명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다양한 사업을 문어발처럼 거느리고 있는 많은 기업들이 저조한 실적을 기록하는 반면 삼성은 잘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이루는 두번째 요인은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이같은 사업들이 제각각 수익성을 낼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구미의 일류 선진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된 것은 어쩌면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덕분이기도 하다. IMF 관리체제의 어려운 터널을 지나면서 시행한 과감한 구조조정의 결과가 오늘날 삼성의 경쟁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사의 기로에서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익성 높은 제품으로 진용을 개편했고 대대적인 분사와 업종 매각을 단행했다. 창업 25년만에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한 것이다. 그때의 구조조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삼성전자는 많은 전자회사 중 하나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이순동 부사장, 구조조정본부 홍보팀장) 지난 1998년 7월말 어느날 오후의 한 장면. 한가롭던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 검은 세단들이 줄지어 나타나면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윤종용 당시 사장을 비롯해 이윤우 사장, 진대제 부사장 등 사장단과 본사의 부문별 최고 임원 등 30여명의 삼성전자 수뇌부가 굳은 얼굴로 속속 차에서 내렸다. 이날 회의의 명칭은 ‘생존대책회의.’ IMF관리체제에 들어선 이후 진행되던 구조조정의 강도를 한단계 더 높이는 시발점이 된 회의였다. 윤사장은 반도체 시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7월 한달 동안에만 1,7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낼 것이 확실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앞으로도 적자폭은 축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뭔가 근본적인 생존방안을 찾지 못하면 쓰러지고 말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이들을 이 자리에 모이게 한 것이었다.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25층 임원회의실도 공간은 충분했지만 안팎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신라호텔을 회의 장소로 정했던 삼성 수뇌부였다. 자산매각과 인원감축, 사업구조조정 가운데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인원은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 등 온갖 방안을 놓고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30%의 인원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다. 모 임원은 “인원감축 대신 전체적으로 임금을 30%씩 깎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윤사장은 “30%를 구하려다 100%의 사람이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여태까지 했던 것보다 훨씬 과감하고 신속한 구조조정을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부터는 회의 참석자들도 모두 구조조정의 대상이었다. 이날 회의는 참석자 전원이 사표를 제출하는 것으로 끝났다. 구조조정의 총책을 맡게 된 김인수 경영혁신팀장(당시)은 경직된 얼굴로 총총히 사무실로 되돌아와 2차 구조조정 서류를 입안하기 시작했다. 고강도 구조조정의 가닥이 잡힌 것은 이보다 수 일 앞서 서울 한남동 삼성의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열린 삼성 계열사 사장단회의. 주력인 전자의 대규모 적자가 예상되는 것을 비롯해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극에 달하자 이건희 회장 주재로 열린 비상대책회의였다. 외환위기 여파로 금융시장은 꽁꽁 얼어붙은 지 이미 오래였다.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이 그동안 해왔던 구조조정을 한차원 더 높여야만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며 추가 구조조정 방안을 보고했다. 이회장은 “무조건 사람을 내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닌데…. ”라고 곤혹스러워하며 “내부에서 흡수할 수 없는지도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회장은 1998년 3월22일 그룹 창립 60주년을 맞아 발표한 기념 메시지에서 “우리는 지금 생존마저 확신할 수 없는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 생명과 재산, 명예까지 내놓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또 경쟁력 있는 서너개 회사만 빼고는 모두 팔라는 얘기까지 했던 이회장이지만 막상 살을 도려내는 듯한 구조조정 방안을 보고받고 보니 순간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달리 묘안이 있을 수 없었다. 1997년 말부터 벌이고 있던 구조조정의 강도를 한차원 높여 신속하게 끝내지 않으면 그룹 전체가 위태롭다는 것이 이날 회의의 결론이었다. “직원들을 설득하지 못하겠다”며 난감해 하는 계열사 사장도 있었지만 “회사를 살리지 못하면 다 그만둘 수밖에 없다. 죽기로 각오하면 무엇을 못하겠느냐”며 결의를 다졌다. 구조본 팀장들은 이날 사표를 내놓고 근무하기 시작했다. 반도체사업 처음 시작했던 부천공장도 팔아치워 구조본 재무팀은 이미 계열사들의 실정을 샅샅이 파악하고 근본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린 상태였다. 그동안 숨겨 놓았던 모든 부실과 무수익 자산을 비롯해 각종 문제점들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이제 남은 일은 전광석화와 같은 실천밖에 없었다. 윤종용 삼성전자 사장은 생존대책회의를 마치고 추가 구조조정 계획이 만들어지자 1998년 8월 수원사업장내 체육관에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사원과의 대화’행사를 열었다. 행사 내용은 전 사업장에 동시에 생중계됐다. 긴장과 불안의 눈초리로 자신을 주시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윤사장은 회사의 현황을 설명하고 고통을 감내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앞으로 자기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리라는 것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불과 6개월 동안 30%의 인력을 줄이는 말 그대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벌였다. 1996년말 국내외를 포함해 8만5,000명에 달하던 인력규모는 1999년말 5만4,000명으로 줄었다. 3명에 한명 꼴로 회사를 떠난 셈이다. 윤종용 사장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건강이 나빠진 것은 물론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고 주변에 토로했다. 또한 장부에는 자산으로 올라 있었지만 사실상 쓸모 없는 재고를 과감히 정리했다. 재고는 1997년 4조1,000억원에서 1999년 말까지 2조1,000원으로 줄었다. 회수 가능성이 없는 부실채권도 2년새 1조5,000억원을 털어내 채권규모가 3조1,000억원으로 줄었다. 2년 동안 갚은 차입금만 9조5,000억원에 달했다. 오디오를 중국으로 이전하고 소규모 전자제품사업에서는 모두 손을 뗐다. ATM칩·화합물반도체회사 등 대형부실 만성적자법인 12개를 구조조정했다. 물류·애프터서비스 등의 비주력사업을 분사시켰다. 해외부문도 인력을 40% 정도 슬림화하고 79개의 거점 가운데 13개를 통폐합하거나 철수했다.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사업을 처음 시작했던 부천공장을 페어차일드에 매각한 것은 구조조정의 백미였다. 이윤우 사장 등 반도체 경영진은 당시 흑자를 내고 있던 부천공장을 팔아 디지털미디어사업에 투자하면 승산이 있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지만 회장의 손때가 묻은 공장을 팔자는 얘기를 어떻게 꺼낼지 몰라 망설였다. 이학수 본부장으로부터 보고받은 이회장은 ”무슨 소리냐. 그런 것은 정서를 볼 게 아니다”라면서 구조조정을 독려했다. 삼성전자는 상시구조조정을 선언했다. 앞으로도 계속 시장상황에 맞춰 사업을 재구축하고 인력과 자산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한다는 방침이었다. 지난해 2조9,000억원의 이익을 내면서도 인력을 10% 가량 줄였다. 고과 및 승진제도를 엄격하게 운용해 자연스럽게 10% 정도는 매년 탈락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라고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 삼성전자 경쟁력의 핵심에는 이건희 회장이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앞서 준비하며 고집스럽게 일등과 일류를 추구해온 점이 오늘의 삼성전자를 만들었다는 해석이 많다. 삼성전자가 오늘의 캐시카우인 D램 사업에 뛰어들도록 하고 외환위기 이전인 1993년에 이미 체질개선을 지향하는 신경영을 주창한 공로만으로도 제1의 경쟁력 요소로 평가받을 만하다는 해석이다. 삼성전자의 D램사업 성공 스토리에는 이회장의 피와 땀이 곳곳에 배어 있다. 이병철 선대회장을 설득해 D램사업을 시작한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88년 반도체 투자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삼성반도체통신을 가전회사이던 삼성전자에 합병했다. 가전이 반도체를 먹여살리면 나중에는 반도체가 가전을 먹여살릴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또 불황기마다 과감하게 투자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1980년대 D램시장을 지배하던 일본업체들을 추월하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당시 일본업체들은 신중하다 못해 우유부단할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D램 가격 회복이 확인되고 다른 업체들이 움직이고 나서야 투자하는 식이었다. 이회장은 불경기이던 2000년 초에도 “불경기라고 해서 투자를 움츠리면 D램 2위와의 격차가 좁아지고 호경기를 놓칠 수 있다”며 과감한 투자를 지시했다. 불경기일수록 과감하게 투자하는 전략이 맞아떨어져 호황때 이익을 더 많이 내고 불황 때도 고부가 제품으로 버틸 수 있는 체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같은 적기투자 덕분에 올해까지 10년째 D램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진대제 디지털미디어부문 사장이 들려주는 반도체 생산방식을 결정할 때의 일화. 지난 1988년 4메가 D램을 개발할 때 실리콘 웨이퍼 표면 밑으로 파내려가면서 반도체 구조를 만드는 트렌치 방식과 위로 쌓아가는 스택 방식을 놓고 논란이 생겼다. 진사장 등 당시 기술진은 트렌치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나 이회장은 단순하게 생각해도 파내려가는 것보다 위로 쌓아가는 것이 쉽다며 스택 방식을 선택했다. 결국 이 결정은 도시바 등 트렌치 방식을 선택한 일본기업이 D램 개발 경쟁에서 뒤처지기 시작하면서 삼성이 승기를 잡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삼성전자의 ‘캐시카우’로 등장한 휴대전화사업도 이건희 회장의 전략적 판단이 성공을 거둔 사례. 한국인의 손기술과 반도체·전기부품 등의 경쟁력을 토대로 휴대전화로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다고 본 이회장은 브랜드 인지도가 관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인 이회장은 올림픽을 브랜드마케팅에 활용하라는 지시를 구조본에 내렸다. 결국 올림픽 후원사를 따냄으로써 삼성 휴대전화는 고급품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힐 수 있었다. 지난 1997년만 해도 세계 20위권 밖에 있었던 삼성의 휴대전화는 삼성전자가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공식 후원업체로 선정된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http://monthly.joins.com/article_view.asp?book_title=&book_id=200209&article_id=5035
작성일 : 2005-10-12